회원 직접 작성 · 2026-08-06 02:43
누구의 잘못인가?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 (Записки из Мёртвого дома, 1860~1862)
줄거리 요약
시베리아의 작은 도시 K시에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고랸치코프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창백하고 마른 몸에 늘 단정한 옷차림, 누구와도 가깝지 않은 그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이었고, 유일하게 마음을 연 것은 하숙집 노파의 손녀 카탸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죽는다.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고랸치코프 자신이 아니라, 그가 죽은 뒤 하숙집을 찾아가 유고를 발견한 이름 없는 편집자다. 노파는 남긴 서류 중 공책 두 권은 이미 써버렸다고 실토하고, 편집자는 남은 뭉치 중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세상에 내놓는다. 자기 자신 → 아내를 죽이고 자수한 가공의 죄수 → 그의 유고 → 제3자의 편집. 완결된 수기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선언한다.
감옥은 가로 200보, 세로 150보의 부정육각형 말뚝 울타리 안에 250명을 가둔 공간이다. 한 죄수는 매일 말뚝을 세며 시간을 견디고, 20년을 복역한 노인은 떠나기 전 여섯 병영을 돌며 말없이 인사한다. 화자는 “인간은 무엇에나 익숙해지는 존재이며, 나는 그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쓴다. 그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노동도 추위도 아닌, 10년 동안 단 1분도 혼자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야기는 점차 이름을 얻는다. 조용하고 예의 바르지만 감옥 안에서 가장 결단력 있는 자로 통하는 페트로프, 여섯 명을 죽이고도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사지 못하는 루치카, 언제나 웃음거리이면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유대인 세공사 이사이 포미치, 부드러운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는 다게스탄 청년 알레이. 성탄 주간, 죄수들이 직접 준비한 연극 공연의 밤—책 전체의 정확히 한가운데 놓인 이 장면에서, 죄수들은 잠시 죄수가 아닌 사람으로 산다.
귀족 출신인 화자는 죄수들의 음식 항의 소동에 자신도 동참하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는다. 편집자는 이 대목에 끼어들어, 아버지 살해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한 뒤 진범이 잡혀 풀려난 한 귀족의 실화를 덧붙인다. 화자는 단언한다. 귀족과 민중은 아무리 오래 함께 살아도 서로의 본질을 알지 못하며, 그것은 귀족이 실제로 권리를 잃고 평민이 되었을 때만 드러난다고.
마지막 해, 출감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오히려 침착해진다. 몇 해 만에 손에 넣은 잡지를 밤새 읽으며 자신이 세상에서 얼마나 낯선 사람이 되었는지를 실감한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 질문이 나온다. “이 벽 안에 얼마나 많은 젊음이 헛되이 묻혔는가. 그런데 누구의 잘못인가?” 답은 오지 않는다. 마침내 족쇄가 발에서 떨어지는 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그를 증오의 눈으로 바라본다. “자유, 새로운 삶,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서문에서, 이 부활한 사람이 훗날 시베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아무와도 말하지 않은 채 홀로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안쪽 이야기는 부활로 끝나지만, 바깥 이야기는 그 부활한 사람의 고독사로 시작한다. 나온 사람은, 정말 나온 것일까.
누구의 잘못인가?
도스토옙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 (Записки из Мёртвого дома, 1860~1862)
줄거리 요약
시베리아의 작은 도시 K시에 알렉산드르 페트로비치 고랸치코프라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창백하고 마른 몸에 늘 단정한 옷차림, 누구와도 가깝지 않은 그는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이었고, 유일하게 마음을 연 것은 하숙집 노파의 손녀 카탸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죽는다.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고랸치코프 자신이 아니라, 그가 죽은 뒤 하숙집을 찾아가 유고를 발견한 이름 없는 편집자다. 노파는 남긴 서류 중 공책 두 권은 이미 써버렸다고 실토하고, 편집자는 남은 뭉치 중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세상에 내놓는다. 자기 자신 → 아내를 죽이고 자수한 가공의 죄수 → 그의 유고 → 제3자의 편집. 완결된 수기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는 것을, 이 책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선언한다.
감옥은 가로 200보, 세로 150보의 부정육각형 말뚝 울타리 안에 250명을 가둔 공간이다. 한 죄수는 매일 말뚝을 세며 시간을 견디고, 20년을 복역한 노인은 떠나기 전 여섯 병영을 돌며 말없이 인사한다. 화자는 “인간은 무엇에나 익숙해지는 존재이며, 나는 그것이 인간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쓴다. 그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노동도 추위도 아닌, 10년 동안 단 1분도 혼자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야기는 점차 이름을 얻는다. 조용하고 예의 바르지만 감옥 안에서 가장 결단력 있는 자로 통하는 페트로프, 여섯 명을 죽이고도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사지 못하는 루치카, 언제나 웃음거리이면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는 유대인 세공사 이사이 포미치, 부드러운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는 다게스탄 청년 알레이. 성탄 주간, 죄수들이 직접 준비한 연극 공연의 밤—책 전체의 정확히 한가운데 놓인 이 장면에서, 죄수들은 잠시 죄수가 아닌 사람으로 산다.
귀족 출신인 화자는 죄수들의 음식 항의 소동에 자신도 동참하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믿지 않는다. 편집자는 이 대목에 끼어들어, 아버지 살해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한 뒤 진범이 잡혀 풀려난 한 귀족의 실화를 덧붙인다. 화자는 단언한다. 귀족과 민중은 아무리 오래 함께 살아도 서로의 본질을 알지 못하며, 그것은 귀족이 실제로 권리를 잃고 평민이 되었을 때만 드러난다고.
마지막 해, 출감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오히려 침착해진다. 몇 해 만에 손에 넣은 잡지를 밤새 읽으며 자신이 세상에서 얼마나 낯선 사람이 되었는지를 실감한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 질문이 나온다. “이 벽 안에 얼마나 많은 젊음이 헛되이 묻혔는가. 그런데 누구의 잘못인가?” 답은 오지 않는다. 마침내 족쇄가 발에서 떨어지는 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그를 증오의 눈으로 바라본다. “자유, 새로운 삶, 죽음으로부터의 부활!” 그러나 우리는 이미 서문에서, 이 부활한 사람이 훗날 시베리아의 작은 도시에서 아무와도 말하지 않은 채 홀로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안쪽 이야기는 부활로 끝나지만, 바깥 이야기는 그 부활한 사람의 고독사로 시작한다. 나온 사람은, 정말 나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