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주요 기업 이사회·임원 면면 보니
사외이사 여성 13.3%→26.8%로 5년 새 2배
크래프톤, 여성 사외이사 80%로 최고
여성 사내이사 둔 곳 12곳뿐…모두 1명
26.8%와 6.5%. 올해 아시아양성평등지수가 100대 기업 리더십에서 확인한 두 숫자다. 외부에서 영입하는 사외이사 중 여성 비율은 여성이사 할당제 등 법제화에 힘입어 5년 새 13.3%에서 26.8%로 2배가 됐다. 하지만 내부에서 성장해 올라가는 미등기임원 중 여성 비율은 지난해 6.5%에 그쳤다. 외부 영입 리더의 다양성은 늘었지만 안에서 길러낸 리더의 다양성은 여전히 빈약하다는 뜻이다.
여성 사내이사 12곳으로…현대차의 상징적 변화
지난해 말 기준 100대 상장사가 여성 사내이사를 1명 이상 두고 있는 기업은 12곳이었다. 2024년보다 2곳 늘었다. 카카오·네이버·LG생활건강·LG유플러스·CJ ENM·아모레퍼시픽·호텔신라·대상·롯데칠성음료·에스엘 등 기존 기업에 더해 현대자동차와 DL이앤씨가 새로 합류했다.
주목할 것은 새 얼굴들이 나온 업종이다. 현대차는 대표적 남초 업종인 완성차 기업으로 사외이사 7명 중 3명까지 여성으로 채우며 올해 지수에서 29계단 상승하는 원동력이 됐다. DL이앤씨는 100대 기업에 포함된 건설사 8곳 중 유일하게 여성 사내이사를 뒀다. 건설업이 지수 하위권에 몰려 있는 업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24년엔 자동차부품사 에스엘이 여성 사내이사를 선임한 바 있다. 이사회 다양성이 소비재·IT 같은 특정 업종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다만 여성 사내이사를 2명 이상 둔 기업은 한 곳도 없었고 12곳 모두 1명에 그쳤다. 2022년부터 3년간 유일하게 여성 사내이사 2명을 뒀던 네이버조차 지난해 1명으로 줄었다. 5년 내내 여성 사내이사를 유지한 기업도 네이버·대상·호텔신라·롯데칠성음료 등 4곳뿐이다. 사내이사 전체로 보면 여성은 여전히 극소수라는 의미다.
사외이사 여성 비율 5년 새 2배↑…크래프톤 80%로 최고
사외이사에서는 보다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다. 100대 기업의 사외이사 중 여성 비율은 2021년 13.3%에서 지난해 26.8%로 5년 새 2배 이상 뛰었다. 여성 사외이사가 한 명도 없는 기업은 같은 기간 50곳에서 12곳까지 줄었다. 5년 전만 해도 100대 기업의 절반이 '남성만의 이사회 감독'을 받았지만 이제는 8분의 1로 좁혀진 것이다. 반대로 사외이사의 절반 이상을 여성으로 구성한 기업은 2021년 5곳에서 지난해 12곳으로 늘었다.
다만 글로벌 기준선은 더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6월 말을 시한으로 대형 상장사에 사외이사의 40% 이상(또는 전체 이사의 33%)을 여성으로 채우도록 의무화했다. 국내 100대 기업 평균(26.8%)은 아직 이 기준에 미달한다. 이런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크래프톤이다. 사외이사 5명 중 4명(80%)이 여성으로 조사 대상 137개사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기아와 카카오도 각각 60%로 뒤를 이어 EU 기준을 훌쩍 넘었다. 2024년 이사회에서 여성이 전무했던 CJ제일제당·대한전선·KG스틸은 예고대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해 0명에서 벗어났고 현대오토에버도 새로 여성 사외이사를 뽑았다. 반면 KT, 현대코퍼레이션, 효성티앤씨, 코오롱인더스트리, 금호타이어, GS글로벌, KCC, 코오롱글로벌 등 8곳은 지난해 사내·사외이사에 여성을 한 명도 두지 않아 아시아양성평등지수에서 낮은 평가 점수를 얻었다.
새 지표 '미등기임원'이 드러낸 민낯…여성 비율, 사외이사의 4분의 1에도 못 미쳐
올해 육성 부문에 새로 반영한 '미등기임원 중 여성 비율'은 이사회 통계가 보여주지 못하던 지점을 드러냈다. 사외이사가 자본시장법이 규정한 '이사회 단일 성별 구성 금지' 의무화에 힘입어 늘어난 '보이는 다양성'이라면, 미등기임원은 그런 법적 의무가 미치지 않는 실제 경영 리더십의 승진 경로다. 사업보고서 공시 항목이라 전 기업을 동일 기준으로 검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올해 산출 방식 고도화의 핵심 지표이기도 하다.
결과는 뚜렷한 온도차였다. 100대 기업 미등기임원 중 여성 비율은 평균 6.5%로 전년(6%)보다 소폭 올랐다. 하지만 사외이사 여성 비율(26.8%)의 4분의 1에도 못 미쳤다. 구성 규제가 있는 이사회는 바뀌었지만 그런 법적 장치가 없는 임원 인사는 제자리라는 뜻이다. 여성 미등기임원이 한 명도 없는 기업은 21곳에 달했는데, 현대제철·한화오션·삼성중공업 같은 중공업뿐 아니라 여성 사내이사를 두고 있는 호텔신라·롯데칠성음료도 포함됐다. 이사회의 여성 한 명이 상징에 그칠 뿐 임원 인사 전반의 변화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콘텐츠·소비재 기업들은 이사회뿐 아니라 임원 인사에서도 여성 리더를 꾸준히 길러내고 있었다. CJ ENM이 32.4%로 전체 1위였고 1년 새 상승 폭(12.9%포인트)도 가장 컸다. 그 다음으로 아모레퍼시픽(26.5%), LG생활건강(25.7%), SK네트웍스(25%), 셀트리온(24.7%) 등이 뒤를 이었다.
금융권은 평균 9.6%로 100대 기업보다 높았고 0%인 곳도 하나은행 한 곳뿐이었다. 사외이사가 없어 감점된 현대카드가 미등기임원 여성 비율에서는 24.1%로 금융권 1위에 오른 대비도 눈에 띈다. 아시아양성평등지수 종합 1위 우리은행은 이 비율을 1년 새 9%포인트 끌어올린 19.1%로 신설 지표가 왕좌 등극의 숨은 원동력이었다.
금융권, 삼성증권이 깬 '0명' 기록…1년 만에 원위치
2024년 37개 금융사의 여성 사내이사는 0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삼성증권이 사상 최초로 여성 사내이사를 선임하며 금융권 유일의 사례가 됐다. 2023년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를 끝으로 끊겼던 금융권 여성 사내이사의 계보가 2년 만에 다시 부활하는 듯 했다. 하지만 올해 해당 사내이사가 사임하면서 37개 금융사 중 여성 사내이사는 다시 0명이 됐다.
사외이사 부문은 개선됐다. 금융권 사외이사 중 여성 비율은 2024년 21.7%에서 지난해 25.4%로 올랐고 여성 비율 50% 이상인 금융사는 롯데카드(60%), 삼성생명·삼성화재·우리은행·하나카드(각 50%) 등 5곳이었다. 여성 사외이사가 없던 금융사는 7곳에서 5곳(우리카드·전북은행·케이뱅크·현대카드·광주은행)으로 줄었다. 부산은행과 KB증권이 새로 여성 사외이사 선임한 결과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종부세가 아니라 서울시민세"…아파트값 이대로 ...다만 이사회 성별 불균형은 여전히 금융사 순위를 가르는 핵심 변수였다. 케이뱅크(-17계단)와 현대카드(-12계단) 등 올해 지수가 급락한 금융사들의 공통점이 바로 여성 사외이사 부재였다. 부문별 1위 점수를 봐도 고용(메리츠증권·25.25점), 보상(신한카드·18점), 양립(롯데카드·16.75점)에 비해 육성 부문 1위(우리은행 등·9점) 점수가 가장 낮아, 금융권 전체의 취약 고리가 어디인지를 보여줬다.
이사회에 여성 있으면 기업 성과 우수
이사회 다양성과 기업 성과의 상관관계는 국내외 연구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글로벌 지수 산출기관 MSCI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이사회 여성 비율이 30% 이상인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최근 5년여간 누적 주가 수익률이 약 19% 높았다. 국내 연구도 같은 방향이다. 성효용 성신여대 교수가 2020년 한국여성경제학회 학술지에 발표한 ‘여성이사 할당제의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를 보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매출 상위 200대 기업 중 여성이사가 1명이라도 있는 기업은 이사회가 전원 남성인 기업보다 총자산순이익률이 1.2%포인트, 매출순이익률은 2.1%포인트 높았다. 성 교수는 보고서에서 “이사회 성별 다양성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전반의 인식과 기업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며 “자격과 경험을 갖춘 여성이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기업 차원의 여성관리자 인력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실효성 있는 일·가정 양립 정착을 위해 제도적 뒷받침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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