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이 900점대, 변별력 있나요?”…무늬만 고신용자 걸러내는 은행
매일경제-경제 · 2026-09-21 21:00
·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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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 원고
없음
총량규제 등 가계대출 조이며
고신용자 심사도 엄격해져
중저신용자는 대출난민 전락
제2금융권서 고신용자와 경쟁
일부 차주 부담이자 20% 육박
정부의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와 극심한 신용점수 인플레이션 속에서 고신용자조차 대출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과거에는 신용점수가 900점만 넘으면 신용대출 등을 제1금융권인 은행에서 받는 데 대체로 문제가 없었지만, 정부의 대출 규제 강화로 은행이 내어줄 수 있는 대출 자체가 줄어들면서 문턱이 높아졌다.
또 전 국민의 절반가량이 신용점수 900점 이상을 받으면서 고신용자 가운데서도 은행들의 ‘옥석 가리기’ 대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평가다. 소득 수준이나 기존 대출 보유 여부, 수년 전의 연체 이력까지 보고 더 엄격하게 심사하면서 고신용자들도 대출 거절을 통보받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고신용자들마저 제2금융권으로 밀리면서 중저신용자들이 설 곳은 더 좁아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21일 국내 주요 시중은행(KB국민·신한·NH농협은행)이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신용점수 901~1000점 차주의 신용대출 신청 건수는 89만6110건으로, 이 가운데 17만6725건이 거절됐다. 신청 대비 거절 비중은 19.7%로 2021년(6.6%)의 약 3배에 달한다. 최상위권인 951~1000점에서도 신청 건수 56만8968건 가운데 17.6%에 달하는 10만415건이 거절됐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동일 기준의 거절 건수를 별도로 산출하지 않아 이번 집계에서 제외됐다.
고신용자들조차도 대출 문턱을 넘기 어려워진 배경에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더 강화되는 대출 규제가 자리 잡고 있다. 금융권 대출이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원인이라는 인식 속에 이재명 정부는 금융권, 특히 시중은행의 대출 기준과 대상을 더 엄격하게 조여 왔다. 이는 결국 은행이 고신용자에 대해서도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대출 대상을 선별하도록 만들었다.
대출을 거절당한 차주들은 “신용점수가 900점이 넘는 고신용자인데 거절당했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들이 더 이상 전통적 개념의 ‘고신용자’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신용점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고신용자 범위가 너무 넓어지면서 대출 거절률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나이스신용정보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용점수 900점 이상 고신용자는 전체의 48.1%나 됐다. 2020년까지만 해도 40.8%였는데, 5년여 만에 7.3%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신용점수 900점대 차주가 많아진 상황에서 단순 신용점수만으로 실제 대출 가능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과거엔 신용점수가 어느 정도 이상이고 규제에 걸리는 것이 없으면 대출 승인이 쉽게 났지만 이제는 소득이나 기타 부채, 몇 년 전 연체 이력 등 요인을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신용자마저 은행 대출에서 밀리면 중저신용자가 설 곳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KB국민·신한·NH농협 등 3개 시중은행의 신용점수 851~900점대 신용대출 거절 비중은 29.5%에 달했고, 801~850점 차주의 경우 거절률이 40%에 육박했다. 600점 이하 취약계층은 10명 중 9명이 은행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했다.
은행권의 대출 문턱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금리마저 인상되면서 금융 소비자들의 어려움도 갈수록 커지는 형국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신용점수 951~1000점 차주들에게 내준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4.35~4.88% 수준이다. 하지만 800점대 차주들은 연 5%대 중후반, 700점대 차주들은 연 6~7%대 금리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었다. 600점 이하의 경우 9%대 금리가 책정된 경우도 있었다.
양극화도 극심했다. 951점 이상 초고신용자의 5대 은행 내 금리 격차는 0.52%포인트에 불과했지만, 600점 이하의 경우 최고·최저 금리 차가 3.07%포인트로 6배나 더 벌어졌다.
더욱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중저신용자들은 똑같이 1금융권에서 밀린 고신용자들과 제2금융권 대출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한다. 제2금융권 대출 금리는 한 자릿수인 1금융권과 달리 연 15% 이상인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2금융권 이용 시 신용점수가 추가로 내려가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